무제(세 번째 냉장고)

창동 레지던시 2층엔 부엌이 있고 부엌엔 두 개의 냉장고가 있고 냉장고 안에는 입주 작가들이 구매하거나 집에서 가져온 식재료와 음식이 이 칸 저 칸에 들어 있다. 간혹 냉장고 안에 둔 무언가가 없어졌다는 얘기가 들리기도 하지만 입주 작가 누구도 냉장고에 넣어둔 타인의 물건에 손대지 않는다. (믿는다) 혼자 먹기 부담스러운 양을 보관할 때도 누군가와 나누지 않으며 두 냉장고 중 어딘가에 있는 자신의 것을 먹으라고 했던 말이 떠올라도 우리는 손을 대지 않는다. (그리 알고 있다) 때론 음식이 상해 버려야 함에도 내 것이 아니어서 냉장고 안에서 썩어도 손대지 않는다. (나도 그랬다) 냉장고 안은 보이지 않는 선으로 가득하다.

어딘가에서 구한 세 번째 냉장고를 복도에 둔다. 이 냉장고에는 각자의 음식을 넣을 수 있고 타인은 그 음식을 가져가거나 그 자리에서 먹거나 버릴 수 있다. 나는 이 냉장고가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아닌 세 번째 냉장고인 점이 맘에 든다.

위로 스크롤